시냇가에 심은 나무

kiung58.egloos.com

포토로그 마이가든 방명록




"스무살에 '잡스'라는 분 알았다면,<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안 썼을 것" 교육관련

15년 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으로 공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 받게' 했고 막노동과 가스통, 물수건 배달로 돈을 벌며 서울대 법대에 수석 합격해 수많은 사람들을 또한 눈물 흘리게도 했던 장승수 변호사(41).

궁금했다. 장승수의 집념과 독기가 힘들게 사는 지금 청춘들에게도 통할까. 장승수가 20대에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산다면 지금 청춘들의 삶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IMF 위기가 대한민국의 생존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장승수의 생존방식이 유효할까.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이 알려진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로투스 사무실로 그를 찾아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진퍼가기 이용안내
image
↑15년전 책 표지의 앳된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장승수 변호사는 여전했다. 막노동하면서 공부할 때처럼, 출근해서 단 1초도 딴 짓 않고 일에 몰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딱 쉰 살까지만 변호사를 하고, 다시 온 정신을 몰입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쉰 살을 넘은 나이에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말이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말, 그것 거짓말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딱 장승수를 두고 한 말 같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졌다. 대학진학은 생각조차 못한 채 식당을 돌아다니며 물수건을 배달하고, 가스통을 돌리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대학 다니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드는 열등감 때문에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보란 듯이 서울대 법대를 가겠다고. 그래서 그는 1년 중 일정기간은 막노동으로 돈을 벌고, 나머지는 입시에 집중했다. 5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던 그가 서울대 인문계열을 수석으로 입학했으니, 개천에서 진짜 용이 난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장승수식 자수성가는 이제 불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청춘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말,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것 같아요. 그런 냄새가 자꾸 나요. 돈 없는 집 애들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죠. 왜냐하면 돈 없는 집 애들까지 꿈꾸고 덤비면 자신들이 위험하니깐 말입니다."

장 변호사는 오히려 "개천에서 용 나기가 더 쉬워진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옛날에는 영어공부를 하려고 해도 비싼 과외선생이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인터넷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기회는 더 많아진 것 아닌가요. 가난하고 지치고 힘들수록 더 악착같이 꿈을 꿔야 하는데, 쉽게 포기해버리니깐 그게 안타까운 거죠. 사회에 나와서 보니깐 성공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한데 말이죠."

집념과 독기의 장승수식 자수성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아니 오히려 더 잘 먹힐 거라는 것, 다만 그 경로만 달라졌을 뿐이라는 게 그의 여전한 결론이었다.

◇"20대에 잡스라는 분만 알았어도, 서울대 가려고 발버둥치진 않았을 것"

기자는 다시 따져 물었다. '(장 변호사가) 등록금에 허덕이고 취업난에 허덕이고 꿈조차 꿀 수 없는 20대를 보면 그런 얘기를 쉽게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잠시 수긍하는 듯하더니 그는 스티브 잡스 얘기를 꺼냈다.

"오늘 잡스라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론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해봐요. 아이폰이라는 것도 실은 세상에 이미 다 있던 부속과 아이템을 조합한 것 아닙니까. 세상에 있던 것을 다르게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별 게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그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 대한 얘기도 했다. "저커버그를 소재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을 본 적이 있어요.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는 저커버그가 친구들 아이디어를 도용한 게 맞거든요. 윈도도 빌 게이츠가 처음 만든 게 아니잖아요. 대단한 건 맞는데, 다들 다른 누구 것 가져온 거 아닙니까. 사실 저같이 머리 나쁜 놈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걔들도 '짜깁기'인데 우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장승수가 20대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던 것 같다. "잡스라는 분을 요즘 젊은 친구들이 보면 무지무지하게 힘이 날 것같은데요. 제가 만일 스무살 때 잡스라는 분을 알았다면 인생이 확 달라보였을 겁니다. 서울대 가려고 그렇게 죽기살기로 발버둥치지 않았을 겁니다." 가난의 극한까지 갔던 장승수에게 서울대 법대가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알기에, 그의 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1990년대 초반 대구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동네 사람들, 친구들이 전부 였죠. 정보도 없고, 꿈을 꾸기도 어려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잡스를 봤으면 컴퓨터에 목숨 걸었을 겁니다. 지금 저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을 겁니다." '꿈 꾸기가 더 쉬워졌다'는 그의 말이 와 닿았다. 그런데 꿈만으로 되기는 더 어려워진 것 아닐까.

사진퍼가기 이용안내
image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지구탈출 수준의 노력 후엔 후회도 없다"

"꿈만으로는 왜 안되죠? 그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진짜 꿈이 없기 때문 아닌가요." 한창 식당에 물수건 배달하던 스무살 때 장승수의 꿈은 서울대 1등이었다. "그땐 서울대 1등이 절 지탱했습니다. 1등 하는 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죠. 아무리 힘들어도, 1등 해서 서울대 정문에 들어가는 장면만 생각하면 가슴이 '쿵' 해지고 그랬죠. 꿈이라는 건 그것만 생각하는 겁니다."

장승수는 오히려 "수능시험이 다가올수록 '떨어져도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험 막바지에 가니깐 떨어져도 그렇게 슬플 것 같지 않더라고요. 안되면 노가다하고 살지 뭐, 할만큼 해봤으니깐,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깐, 노가다 해보니깐 별로 힘들지도 않던데 뭐, 오히려 편안해졌어요."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안돼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들었을까. 그의 표현대로 '지구탈출 수준의 집념과 노력'이라면 후회도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에너지 넘쳐 나는 20대인데, 눈물 날 정도로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몰입하면 다 되지 않겠습니까. 용기와 무모함만 있으면 다 되는 것 아닌가요. 안돼도 후회가 없을 만큼 그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그렇게 해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 장승수는 어떤 변호사가 되었는지 물어봤다. 1996년 대학에 입학한 장승수는 잠시 대학생활을 즐기기도 했고, 또 잠시 슈퍼플라이급 복싱선수로 뛰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죽기살기로 공부해 2003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생업 팽개치고 무료변론 다니는 변호사는 아니고요. 김앤장에 있는 연수원 동기들보단 많이 법니다. 그렇다고 돈만 밝히는 변호사는 아니에요.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데 어려운 사람들은 (수임료를) 20% 덜 받습니다. 변호사하면서 정말 나쁜 놈한테 평생 모은 재산 다 날린 억울한 사람들, 착하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상한 놈 나타나 다 빼앗으려는 힘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막아주고 지켜줄 때, 그때 그 보람이 가장 큽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가 법적으로 구제 받기가 참 힘들어요."

장승수는 여전히 악착같이 살고 있었다. "공부할 때와 똑같습니다. 출근해서 단 1초도 딴 짓 안하고 일만 합니다. 점심도 30분만 먹고, 담배 피울 때도 사건 생각만 합니다. 변호사들 신문 다 보고, 바둑도 두고 그러는데 이 방에서는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밤 11시 퇴근할 때면 옛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집에 갈 때처럼 뿌듯하게 퇴근하는 거죠."

변호사가 됐으면 좀 여유 있게 살아도 될 텐데 굳이 왜 또 그렇게 살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공부는 게을러지면 내 인생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변호사일은 의뢰인 인생까지 망칩니다. 어떤 변호사가 맡아도 결과가 빤히 보이는 사건도 혹시 다르게 접근하면 잘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부담이 장난이 아니에요. 자다가도 새벽에 벌떡벌떡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 한대 피면서 사건 생각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가끔은 날씨 좋을 때 도서관서 책이나 읽었으면 합니다.새삼 느끼는 건데 진짜 공부가 제일 쉬운 것 같아요."

기자는 만약에 살다가 변호사에게 의뢰할 일이라도 생기면 꼭 이 사람에게 맡겨야겠다 싶었다. 내 사건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 아닌가. 설사 승소를 못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장승수는 "앞으로 딱 10년, 쉰살까지 '빡세게' 살다가 변호사를 그만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시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천문학책도 보고싶고 그래요. 노가다할 때 대학가면 이것저것 다해보고 싶은 거랑 똑같은 거죠. 돈도 많이 벌고 싶어요. 대학 들어갔을 때 우리 집 전재산이 1천만원이었는데 한 1천억원은 벌라고 합니다. 그 돈 벌려면 변호사 계속 하면 안되죠."


메가스터디 만든 손주은, "차라리 깽판을 쳐라” 교육관련

메가스터디 만든 손주은, "차라리 깽판을 쳐라”

[머니투데이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이현수 최우영기자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9>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50만원 하던 시절 연 2억원을 벌던 과외선생, '손사탐'이라 불리며 수천명의 수강생을 몰고 다니던 유명 학원강사, 그리고 지금은 시가총액 8000여 억원의 메가스터디 대표, 손주은 회장(50).

지난달 27일 기자는 서초동 메가스터디 본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가 마흔 때 했다는 동영상 강의를 보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색깔분필을 많이 쓰는 선생은 처음이었다. 노랑 파랑 빨강 분필에다, 별표도 한 개짜리, 두 개짜리, 세 개짜리, 거기에다 가는 선과 분필 눕혀서 굵게 그린 선 등 분필들의 호화 경연장이었다.

"여러 색깔을 쓰면 저 스스로 집중력이 생기고, 그 집중력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거죠. 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요? 제발, 너희들은 이거 까먹으면 안돼, 제발 좀 알아줘야 해, 정말 중요한 거야, 뭐 그런 절규에요. 소리치는 거에요." 기자는 이 정도 열정, 이 정도 진정성이면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줄 자격이 된다 싶었다.

"공부로 구원을 받는다? 기득권 뒷다리만 잡을 뿐이다"
동영상 강의 얘기를 다시 꺼냈다. 10년 전 동영상 속의 손사탐은 "공부말고 니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목숨 걸고 해봐, 이넘들아. 알겠어?" 고교생들에게 거의 '협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20대 후반이 돼있을 이들에게 또다시 "취업공부, 고시공부말고는 니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목숨 걸고 해봐. 알겠어?"라고 협박할 것인가, 기자는 따지듯 물었다. 대답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습니다. 생각이 모자랐어요. 이젠 신자유주의 시대 아닙니까?" 국내 최고의 사교육업체 대표가 "목숨 걸고 공부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다 소용없다고, 그것도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이유로 말이다.

"취업공부, 고시공부에 목매는 건 두렵기 때문이에요.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 안전망이라도 찾자는 거죠. 양극화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일 뿐입니다. 공부해서 취업한들 대기업 부속품밖에 더 됩니까. 얄팍한 인생밖에 더 됩니까. 이제 공부는 구원이 아니라, 기득권층 뒷다리만 잡고 편하게 살자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기자는 잠시 멍했다. 사교육으로 돈 버는 회사 대표라면 "신분 상승하려면 공부뿐이다", "몇 년만 참으면 인생 바뀐다"고 해야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아닌가.

그는 "메가스터디가 나쁜 기업일 수도 있다"고 했다. "메가스터디는 컸는데 젊은이들이 절망적 상태에서 꿈도 못 꾼다면 엄청나게 나쁜 기업이죠. 몸에 안 좋은 약 파는 짓보다 더 나쁠 수 있죠.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매출의 덫에 빠지지 말자고 해왔지만 교육보다 기업에 더 관심을 뒀던 것 같고. (인터뷰 하고 있는) 지금처럼 CEO의 가면을 벗고 싶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얄팍한 수작일지 모르고…"

"좀 '깽판'도 치다가 다른 길로 치고 들어가라"
공부해도 소용없는 이유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랬다. "가진 사람들이 부를 세습하는 장치들이 너무 단단해요. 가진 사람들이 자식들을 위해 너무나 튼튼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있어요. 그래서 공부 잘한다고, 명문대 나온다고 중산층으로, 그 이상으로 올라가긴 쉽지 않아요. 대학 잘 가는 건 경쟁력 요소의 하나일 따름이지, 그렇게 큰 경쟁력은 아니라는 거죠." 어차피 바닥부터 시작해서는 아무리 공부 잘해도 중상층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죽도록 공부해봐야 얄팍한 인생 면하기 힘들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손주은은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꺼냈다. "마르크스 혁명론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기술적 변화, 기술적 혁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잡스가 보여주었던 변화, 남들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창의성, 이것이 미래 경쟁력이 아닌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손주은은 "깽판도 칠 수 있는 젊은이들이게 미래가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대학 잘 간 애들이 보이는 행태가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깽판도 좀 칠 수 있는 애들한테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차라리 기득권의 안전장치가 없는 곳, 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넘 볼 수도 없는 다른 길로 팍 치고 들어가라는 거지요. 어차피 그들의 안전장치는 쉽게 풀리지 않거든요. 다른 길에서 승부하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손주은은 하나 더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너무 튼튼한 안전장치는 만들지 마라는 것, 그건 어른으로서의 작은 당부이지요."

손주은은 새로운 사교육 모델을 구상중이다. 학생들 역량을 평가해 공부 잘할 수 있는 학생, 공부는 안 맞아도 다른 걸 잘할 수 있는 학생을 판별해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러면서 이익은 얻지 않는 것. 그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알만했다.

"자식 떠나보낼 때까지 내 삶은 엉터리였다"
손주은은 대학(서울대 서양사학과) 시절 두 번의 실연으로 절망의 선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고, 도박당구에 빠지기도 했고,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했고, 그러다 덜컥 애를 낳아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과외선생을 했고, 계속 돈 벌려고 학원 강사를 했다. 그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야합하면서 완전 엉망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네 살짜리 아들, 두 살짜리 딸을 몇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보냈다. 그땐 그도 세상을 떠나보내고 싶었다. 한강에 몸을 던지지 않는 한, 방법은 '오로지 강의' 뿐이었다. 머리 속에 1%의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도록 죽을 만큼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것. 딸아이를 묻은 바로 다음날부터 그는 그렇게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강한 펀치를 한대 얻어맞고 나니까 고통 같은 건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멍한 것, 고통보다 더 큰 멍한 것. 닥치는 대로 강의를 했죠. 잊을 수 있으니까. 그때 이후로 다들 큰일났다고 해도 전 큰일났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드는 거에요.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해버려서 그런지, 충격을 별로 안 받는 기제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 때까지도 그의 삶은 '엉터리 삶, 가식적인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새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집중적으로 고민했다. "이러다간 어이없는 인생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벤츠 타고 살 순 있지만 가진 사람들 뒤나 핥아주는, 그런 인생 말이죠.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전혀 새로운 인생이란 게 저한텐 없더라고요. 가르치는 일을 내가 잘하니깐, 사교육의 현실을 인정하고 차선책을 구하자 싶었죠." 그래서 손주은이 시작한 것이 강남 부잣집 아이들 상대의 스파르타식 사교육대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강의와 뒤이어 온라인 강의였다.

"영혼의 울림에 몰입하면,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
남들이 안 해본 극한의 경험을 해서 그런지, 청년들에 대한 그의 당부는 철학적이었다. '무엇을 하고 살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지' 천착하는 것, '얄팍한 중독'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에 몰입하는 것', 그래서 '농구공이 골대에 빨려 들어가듯 자신을 어딘가에 갖다 꽂는 것'이었다.

"시급알바하며 용돈 벌고, 남는 시간 여자친구 만나고 게임하고, 하루하루 그렇게 보내면서 바쁘다고 하고. 도서관 가서 시험공부 취업공부 좀 열심히 하면 그걸 몰입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얄팍하게 살다가는 답이 안 나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경험은 폭도 작고, 엉터리경험, 가짜경험, 기성의 논리에 편입되는 경험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고 싶은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까. "그간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입니다. 난 이렇게 살았다, 저렇게 살았다, 잘했다, 성공했다, 노력을 덜했다, 이런 차원의 반성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 '가치'의 문제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거죠.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빨리 안전망이나 찾자는 건 아닌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게 몰입인지 중독일 뿐인지,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바로 거기서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청춘이기 때문에 더 자기인생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인생의 본질에 충실한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죠. 하지만 8800만원을 벌어도 눈치 봐야 하고 속으로 절망할 수 있어요. 반대로 88만원 밖에 못 벌어도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당당할 수 있어요. 물론 당장은 큰 결과를 못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자기내부에 양심과 영혼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면, 그 울림에 귀 기울이고 몰입한다면, 그래서 모든 걸 던진다면, 상상 이상의 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거지요."

청춘들은 많이 불안하고 초조한데, 그렇다고 대기업에 취업하고 고시에 패스하면 그 불안은 가실까. 손주은의 얘기대로 갈비뼈 윙윙거리는 영혼의 울림을 가지고, 그 울림에 모든 것을 꽂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오히려 덜 불안하고, 덜 초초하지 않을까.

손주은은 기자가 도착하기 전 2시간 동안 앉아서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데, 아! 이건 아닌데'하며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최소한 남을 속이진 말자, 아니 나 스스로를 이젠 좀 덜 속이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도 지금 나 자신을 많이 속이고 있거든요."

인생의 정답은 그의 말처럼 '변증법'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건 아닌데' 하며 반성하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 끊임없이 영혼의 울림에 모든 걸 꽂으려는 과정 속에 정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젠 손에서 분필을 놓았지만, 그의 영혼엔 여전히 색깔분필의 열정이 가득했다.

나의 20대, 살아있는 채 지옥에 끌려온 것 같았다 교육관련

나의 20대, 살아있는 채 지옥에 끌려온 것 같았다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5> 작가 이지성

사진퍼가기 이용안내
image
이지성은 "우리나라 20대는 단체로 침몰하는 배를 타고 있다"며 "남들이 다 가는 길을 쫓아가는 것, 그것이 오히려 가장 불안하고 위험한 길"이라고 진단했다. 20대 딱 10년만큼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꿈을 만들고 그 꿈에 매달리는 것, 바로 이것이 20대의 생존법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 모두 200만부 이상 책이 판매된 베스트셀러 작가 답지 않게 이지성(37)은 여리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안철수 선생님만해도 서울대 나오고, 20대에 의대 교수가 되고, '백신'까지 만드셨잖아요. 시골의사 박경철씨 같은 분도 병원 원장 아닙니까. 이분들에 비하면 저는 (20대의 멘토가 되기에) 자격이 없죠. 다만 그분들이 줄 수 없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저한테서 받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10등급 중에서 5등급, 남자 여자 따로 뽑던 시절 운 좋게 지방교대(전주교대)에 진학했고, 학점이 좋지 않아 임용고시에 응시할 자격조차 안됐지만 남자 교사가 모자라 또 운 좋게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하지만 성인들 사이의 '왕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20대를 외롭게 보냈고,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교사 월급은 빚 갚는데 다 들어갔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출판사 80곳으로부터 거절을 당하며 14년을 무명작가로 보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다.

이런 이지성이 펴낸 책들에 대한민국 20대가 열광하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정재계와 연예계 유명 인사들이 그에게 만나기를 청하고, 2만5천명 회원을 거느린 팬카페도 만들어졌다. 대체 안철수, 박경철이 가지지 못한 무엇을 가졌길래 수많은 20대가 그의 얘기를 들으며 힘을 얻고 있는 것일까.

지난 달 30일 이지성이 사는 서울 약수동 인근 카페에서 2시간여 만나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20대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힘들 수 있는지 그는 경험해 봤다는 것. 그리고 지하 100층까지 추락하는 좌절에서 그는 올라왔고, 올라오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나의 20대, 살아있는 채로 지옥에 끌려온 것 같았다"
스무 살 때 이지성의 꿈은 시를 쓰는 것이었다. 200명이 교대를 졸업하면 50~60명은 임용고시에서 떨어지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책보고 시만 썼다. "그때는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줄 알았어요. 도서관에 갔을 때 책이 저한테 확 다가오는 느낌 말이죠.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가슴에 꿈틀거리는 꿈을 믿었죠."

하지만 시를 써서 수 백번 출판사로 보내도 집과 학교로 반송우편만 수북이 쌓였다. 대학 친구들은 되지도 않는 시인의 꿈만 꾸던 그에게 "'또라이' 중에 저런 '또라이'가 없다"고 비아냥거렸고 후배들은 "저 선배 만나면 큰일난다. 물들면 끝장난다"고 수근거렸다. 늘 외톨이로 지내던 그에게 "불쌍하다"며 위로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얼마 안돼 그들 역시 멀어져 갔다.

대학시절 매달 넷째 주 목요일에는 아버지가 빌린 돈 이자를 갚기 위해 하루종일 전주 시내 은행과 새마을금고 등을 돌면서 10만원씩 이자를 돌려 막았다. "너무 비참했습니다. 20대에는 꿈을 믿고 나가면 머지않아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저 또한 그렇지 않았고요."

스물 일곱, 그는 운 좋게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방과 후면 퇴근도 않고 글만 써대는 그를 보면서 동료 교사들은 '이상한 선생'이라고 불렀다. 아버지의 빚은 더 늘어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지성은 12가구가 재래식 화장실을 나눠 쓰는 빈민가 옥탑방에서 살아야 했다.

"스물부터 스물 아홉까지 처절도 그렇게 처절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계속 추락했죠. 10년 동안 내 꿈을 위해 사람도 안 만나고 미친 듯이 책만 읽고, 글만 썼는데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세상은 이렇게 가혹하구나' '재능이 없는 사람이 꿈을 꾸려면 완전히 미친 놈이 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밑바닥에 떨어져도 그 밑에 또 지하실이 있어요. 1층, 2층 끝없이 내려가는 거에요. 스물 아홉이 되던 해 12월31일 제 느낌은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0층에 도달한, 더 이상 갈 데도 없고, 전원도 끊기고, 그런 막막한 느낌이었죠."

◇"지옥 같은 곳을 지나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지나가라"
그러던 어느날 그는 문학과 철학 대신 자기계발서를 집어 들었다. "빈민가에 떨어지니깐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가족을 다시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1%도 없었어요. '문학과 철학은 나의 경제적, 사회적 삶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구나'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처칠 위인전에서 '만일 지옥 같은 곳을 지나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지나가라'는 구절을 읽고 무릎을 쳤다. "그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죠. 그런데 이 말을 보는 순간 '이런 사고방식도 있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20대에게도 정말 지옥 같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거기에 주저앉아버리면 영원히 지옥이니깐, 하지만 진짜 지옥은 아니니깐,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요."

바로 마음의 힘이었다. "제가 재능으로는 다른 사람들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꿈을 믿는 마음은 그들이 제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분명히 되겠구나' 확신했죠. 만약에 안되면 그건 우주가 잘못된 것이고,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거에요.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됐죠. 뭐랄까. 전교 꼴지인데, 기말고사 답안지를 미리 받은 것 같은 느낌 말이죠. 답안을 외우면 전교 1등이 될 수 있잖아요. 내가 읽은 책에 꿈을 이루는 답안이 다 들어있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깐 말입니다. 인생의 답안을 미리 본 기분이었죠. 그러니 내 꿈이 이뤄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진퍼가기 이용안내
image
◇"지하 100층에서 올라오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그래서 이지성이 20대에게 권하는 독서법은 '스펙 좋은 멘토'들이 권하는 독서법과 달랐다. "저보다 더 대단한 분들의 독서법은 어차피 그분들만의 성공 방법이죠. 그분들의 독서를 따라 한다고 일반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체계적으로 알아서 하고, 사회에 나가 일이 맡겨지면 최고로 잘하고, 이런 식으로 성장해온 분들 아닙니까."

하지만 20대는 성공보다는 좌절하는 삶을, 체계적인 삶보다는 망설이고 주저하고 우왕좌왕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 "대부분의 20대는 자기관리 능력이 없어요. 훌륭한 분들이 문학과 철학과 고전을 권하지만, 자기관리능력이 없는 20대가 섣불리 고전에서 시작하면 머리만 커지고 인생은 더 나빠질 수 있어요. 20대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하 100층에서 올라오는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통해 내 안의 부정적 사고방식을 없애는 것.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이것을 못하면 우주가 잘못된 것이야'라고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행동에 실제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 누가 봐도 인정할만한 파격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기부와 봉사를 하는 것이다.

"아토피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7년을 방안에서 지낸 친구가 제 책을 보고 찾아왔어요. 책부터 많이 읽게 했죠. 어느날 '영어학원 차리는 게 꿈'이라고 하길래 '그럼 다음달에 차리면 되잖아'라고 했어요. 20대를 방황하다 방통대를 졸업한 한 친구도 찾아와 사업을 하는 게 꿈이라고 하길래 제가 그랬죠. '그럼 다음달에 사업 시작하면 되잖아.' 사업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열정으로 하는 겁니다. 당장 자신의 행동에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영원히 변화할 수가 없어요." 이 두 사람은 지금 각각 연매출 3억원의 학원과 50억원대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기부와 봉사는 왜 중요할까. 이지성은 "자기계발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 정용진 부회장과의 인연을 끊었다"고 말했다. "참 좋은 분이지만 지난 7월 등록금 벌려던 대학생 등 인부 4명이 이마트 냉동창고에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 걸 보며 실망했죠. 정 부회장 뿐 아니라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분들이 만나자고 해서 많이 만났어요. 솔직히 모든 스케줄 중단하고 '대한민국은 지적(知的)으로 망했는가'라는 책을 쓰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나 싶었습니다."

◇"20대가 꿈을 추구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
이지성이 20대에게 던진 화두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가 얘기하는 꿈은 낭만도, 도전도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1980년대만 해도 대학 나오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깐, 그땐 꿈이 낭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학점 잘 받아 대기업 들어간들 인생이 바뀌나요. 10년 뒤에는 어떻게 할건데요. 과로사하든지, 나와서 피자가게 하다가 망하든지, 오히려 남들처럼 그렇게 사는 게 가장 불안한 삶, 불안한 길 아닌가요. 지금 한국의 20대는 단체로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습니다. 집단 사이에 묻혀 있으니 그 순간은 안심이 되죠. '100만명이 설마 다 죽겠어'하면서 말입니다."

이지성이 얘기하는 꿈은 죽지 않기 위한 탈출의 수단이자, 생존 방법이었다. "재능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수록, 너무 평범하고 열등할수록, 그럴수록 믿을 건 꿈밖에 없습니다. 절실하게 꿈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 절실한 마음이 재능과 스펙을 가진 사람들을 압도하게 되고, 거기에서 기적이 생기는 겁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건 마음이지, 스펙이 아니거든요. 누군가는 침몰하는 배에서 헤엄치고 육지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보트라도 끌어다 줄 수 있고, 신고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꿈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20대라면 가슴에 흐르는 피가 뜨겁잖아요. 딱 한번 뿐인 10년인데, 진짜 딱 10년밖에 없는 건데, 그 귀한 시간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살면 안되나요. 그게 곧 생존을 보장 받는 최고의 방법 아닌가요." 지하 100층까지 추락해 봤던 이지성이 살아왔던 방식이기도 하다. 여린 줄 알았던 이지성은 참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이현수 최우영기자 hyde@

20대는 인생의 아침, 하루 다간듯 좌절하지 마라 교육관련

20대는 인생의 아침, 하루 다간듯 좌절하지 마라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4> 김난도 서울대 교수 

사진퍼가기 이용안내
image
김난도 교수가 인터뷰 내내 청년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조급해 하지 말 것,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었다. 그는 “일찍 꽃을 피웠다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초봄에 꽃을 못 피웠다고 청년들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당장은 힘들어도 얼마든지 화려한 주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48) 연구실 책상 위에는 1백통은 되는 듯한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이다. 이메일을 일일이 출력해놓은 종이도 그 옆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메일은 대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편지는 군대와 교도소에서 주로 온 것이었다.

김 교수는 교도소에서 온 편지를 하나 집어 들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편지를 쓴 재소자는 “20대에 큰 죄를 지어 10여년째 수감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가면(출소하면) 나이가 마흔인데 인생 끝났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책을 읽고, 나가도 낮 12시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직도 내 인생이 반이나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도소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 교수는 책에서 인생 80년을 24시간에 비유하면서 서른 살은 오전 9시, 마흔 살은 낮 12시, 쉰 살은 오후 3시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 재소자가 출소할 마흔은 아직 점심식사도 하지 않은 시간인 셈이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은 거죠. 인생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는 없어요.” 하물며 마흔 살이 다 되가는 재소자도 새로 시작한다는데, 이제 갓 아침시간에 불과한 20대들이 하루가 다 간 것처럼 절망하고 있지 마라는 얘기였다.

“유럽여행보다 커피믹스에서 진짜 경험이 나온다”
김 교수도 젊은 시절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대학(서울대 법대) 동기들은 한번 만에 붙는 행정고시를 3번씩이나 낙방했을 때이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고시에 붙고 싶었죠. 그러나 계속 떨어지고 좌절하면서 다음해에는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렇다고 포기하겠다는 용기도 갖지 못한 채 어둡고 긴 시간을 그냥 보냈다”고 말했다.

그때 즈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1년 사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내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을까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고개 들어 주위를 보니 또 다른 인생이 있는 거에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조급해 하면 안됩니다. 살기 힘들수록 집에서 뒹굴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작은 기회마다 경험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청 청년인턴으로 들어간 대학생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게임만 했다는 거에요. 물론 학생들 뽑아서 복사나 시키는 제도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학생도 문제라고 봐요. 아무것도 안 시킨다고 게임만 하고 오는 게 문제라는 거죠. 가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결제는 누가 하는지, 어떤 서류가 구청에서 승낙이 나는지 열심히 쫓아다녀야 합니다. 아침마다 커피믹스 타서 과장님 갖다 드리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고 친해지면, 적어도 구청이 어떤 조직인지는 알 것 아닙니까. 나중에 시험 봐서 공무원이 돼야겠다든지, 음식점 하는 부모 대신 구청에 위생신고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될지 뭔가 깨달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경험을 많이 쌓으라는 것은 돈 많은 집 자식들처럼 해외여행 가고, 돈 싸 들고 어학연수 가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기회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대에서 학생들의 아픔을 가장 잘 들어주고 어루만져 준다는 ‘란도샘’도 이 대목에서는 다소 흥분하며 20대를 타일렀다. “스피치 강사로 유명한 김미경씨가 한번은 자기가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이렇게 성공하진 못했을 거라고, 자기는 지지리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게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에요. 힘들수록 더더욱 내 인생의 주연이 돼야 하는데, 원망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청춘들은 곧잘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지금 이 시간의 경험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끼 독수리는 오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
하지만 등록금 대기도 힘든데, 스펙 쌓기도 바쁜데. 취업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이루는데 ‘조급해 하지 마라’고, ‘많은 경험을 쌓아라’고 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얘기가 아닐까. 그러자 김 교수는 오리가 되고 싶은 새끼 독수리 비유를 들었다.

“오리는 물에서 헤엄칠 수도 있고, 땅에서 달릴 수도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죠. 헤엄치고, 달리고, 거기에다 날기까지 합니다. 최고의 스펙입니다. 하지만 오리는 돌고래처럼 헤엄칠 수가 없고, 독수리처럼 날 수도, 말처럼 달릴 수도 없지요. 많은 청년들이 두루뭉술하게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합니다. 나중에 독수리가 될지도 모를 청년들이 오리가 되려는 연습만 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헤엄치고, 적당히 달리고, 적당히 날아다니는 연습 말입니다. 사회도 그걸 요구하고 있죠. 기업들이 서류 스펙만 보고 있으니까 다들 오리가 되는 연습만 하고 있는 거에요.”

김 교수의 말처럼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으니 사회가 바뀌어야지, 청년들이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아니죠. 청년들 역시 ‘나는 오리가 아니라 새끼 독수리이다’는 확고한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청년들이 조급하니깐, 빨리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한쪽으로 몰려다니는 겁니다. 잘 날지 못하는 새끼독수리는 지금 당장은 오리보다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리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비상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위와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훨씬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초조해 하면서 쉽게 좌절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서도 잘 나간다는 82학번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원희룡 나경원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 한승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김상헌 NHN 대표 등이 동기이다. 많은 동기들이 사시에 합격해 판검사하고, 유학을 가는 동안 그는 행시에 3번이나 떨어졌다. 그가 만일 오리처럼 살고자 했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소비 트렌드 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대한민국 청년들을 위로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과연 쓸 수나 있었을까.

“수술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위로가 되는 진통제도 필요하다”
김 교수에게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아프니까 청춘’인데 청춘이 왜 아픈지, 청춘들이 안고 있는 상처의 실체는 무엇인지. 김 교수는 격화된 경쟁과 세대 갈등을 꼽았다.

“우리 세대만 해도 군사독재에 맞서면서 만들어진 동료애가 있었습니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러도 옛날에는 무대 마지막에는 다 모여서 같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조건 한 명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아야 합니다. 생존경쟁, 이것이 바로 청년들이 아픈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분배가 기성세대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기성세대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신입 임금 깎아서 구조조정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태아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건 사회적인 낙태 행위입니다. 이 두 가지의 본질은 결국 하나입니다. 사회가 기성세대 위주로 재편돼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서라도 살아 남으려고 청년들끼리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상처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청년들에겐 방법이 없습니다. 청년들에게 ‘짱돌’을 들라는 건 올바른 해법이 아닙니다. 좌절만 줄 뿐이죠.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고 있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답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 빌 게이츠 같은 사람 참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독점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회사의 특허를 침해하고 사들이는 등의 반경쟁적인 정책을 폈지 않습니까. 오히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기부를 많이 못하더라도, 좋은 소프트웨어 만드는 회사들과 공생 발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창업해서 될만하면 싹을 잘라버리고, 한번 실패하면 재기의 기회도 주지않는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 하나로 큰 기업을 만들 수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기성세대가 답안을 만들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 “청년문제는 결국 수술을 해야 고칠 수 있는 병입니다. 하지만 완치까지 오래 걸릴 수 있고, 어쩌면 완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진통제가 필요합니다. 기성세대가 ‘많이 아프지’라면서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얼마 전 김 교수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조국 교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 열풍을 설명하면서 “(안 교수 열풍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교수의 책이 성공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닌 들어주려는 태도로 청년들에게 다가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교수의 이런 어법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청년들에게 어려운 말로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그는 다정한 선배가 바로 옆에 앉아 얘기하듯 조언했다. “너희들은 새끼독수리야. 오리가 되려고 조급해하지마. 이제 아침시간에 불과한데 뭐 어때.”

오프라 윈프리를 만든 10가지 장면들 교육관련

오프라 윈프리를 만든 10가지 장면들


오프라 윈프리 쇼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 부부/출처=BBC
24일(현지시각)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미국 역사상 큰 인기를 끌었던 오프라 윈프리 쇼가 2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오프라 윈프리(Winfrey)는 그의 토크쇼에서 수많은 화제를 낳았으며 마돈나, 비욘세, 톰 행크스 등 당대의 스타와 인물들이 윈프리의 쇼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쇼에 나와 자신의 출신지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마지막 녹화의 주인공은 윈프리 자신이었다. 그는 그렇게 당당함과 친화력·대중 호소력을 무기로 25년간 숱한 화제를 남겼다. 영국의 BBC 방송은 당대 최고의 토크쇼였던 오프라 윈프리 쇼의 명장면 10선을 꼽았다. 이 중에는 한 시대의 트렌드를 이끈 이정표가 된 방송도 있다.

손수레에 지방덩이 30kg을 끌고 나온 오프라 윈프리/출처=BBC

◆ “나는 어렸을 적 강간당했습니다” 고백
윈프리는 자신의 쇼가 시작된 1986년, 쇼를 찾은 관객들에게 “나는 어릴 적 강간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윈프리는 10대 흑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나고 나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으며 9살 때부터 친척과 이웃으로부터 지속적인 강간을 당했다.

그의 고백은 한 강간 피해자의 선언으로 그치지 않았다. 윈프리는 쇼를 찾은 사람들을 자신 옆에 마련된 소파에 앉히고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들었다. “나는 강간당했다”라 말할 수 있는 ‘진솔함’과 ‘감정이입’에 수많은 스타도 자신의 마음을 열었다.

◆지방 덩어리를 손수레에 끌고 나오다
1988년 윈프리는 옵티패스트 다이어트(단식하며 다이어트 보조식품을 먹는 방식) 선언 4개월 만에 30㎏을 감량했다. 그는 감량 직후, 10사이즈 청바지를 입고 손수레에 30㎏의 지방 덩어리를 실은 채 등장했다. 얼마 후 “4개월간 단식했으나 방송 직후 축하 음식을 마구 먹었더니 이틀 만에 청바지가 맞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마이클 잭슨의 입을 열다
1993년 윈프리는 좀처럼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마이클 잭슨을 섭외하는 데 성공, 그의 저택 ‘네버랜드’에서 생방송 독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방송은 무려 3650만명이 시청해 미국 토크쇼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국 방송 전체에서도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시청률이었다.

9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은 그가 ‘백반증’이라는 피부색 변이에 시달리고 있음을 털어놨다. 당시 윈프리는 마이클 잭슨에게 더 이상 수술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오프라 윈프리 ‘통 큰 선물’
2004년 9월, 쇼의 19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 오프라 윈프리는 방청객 276명 모두에게 제너럴모터스(GM)의 스포츠 세단인 폰티액 G6을 한 대씩 선물했다. 이날 방청객이 받은 자동차의 가격은 모두 합해 7백만 달러(약 76억원)에 이른다.

선물을 받은 방청객들은 ‘내 가족과 친구들이 차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편지로 써 보낸 사람들. 쇼는 윈프리가 방청객 11명을 무대로 불러내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들에게 차를 한 대씩 선물했으며, 이어 남은 방청객들에게 선물 상자를 하나씩 나눠줬다.

윈프리는 방청객들에게 나눠 준 상자들 중 하나에 12번째 차 열쇠가 들어 있다고 말했지만, 방청객들이 상자를 열자 모든 상자에 자동차 열쇠가 들어 있었다.

소파위에서 케이티 홈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뛰고 있는 톰 크루즈/출처=BBC
◆소파 위의 톰 크루즈, 엘렌 드제너러스 “나는 레즈비언”
2005년 오프라 윈프리 쇼를 찾은 톰 크루즈는 인터뷰 중 소파 위에 올라가 깡충깡충 뛰며 케이티 홈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시 톰 크루즈의 행동은 전 세계적으로 회자됐고, 그는 케이티 홈스와 결혼하게 된다.

시트콤 ‘엘렌’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엘렌 드제너러스는 1997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혔다. 윈프리는 보수적인 미국 방송의 관례를 깨고 자신의 쇼에 성적 소수자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저자 제임스 프레이에게 이용당하다
2006년 오프라 윈프리는 쇼에서 범죄와 마약 중독 등으로 얼룩진 과거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제임스 프레이의 자전적 도서 ‘100만개의 작은 조각들’을 추천했다. 이후 책은 200만부 이상 팔렸고 그 해 미국에서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문제는 다음해 이 책의 내용 상당 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희대의 베스트셀러 사기극에 일조한 셈이 됐고 자신이 프레이를 초대한 것을 후회한다고 최근 밝혔다.

◆남아프리카 여학교 개교
오프라 윈프리는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근처에 40만 달러(약 4억4000만원)를 들여 여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내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감격했고 학생 선발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학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 후 두 차례 교사 섹스 스캔들과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으며, 지역주민들과도 각종 문제가 발생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힐러리가 아닌 오바마를 지지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권의 구애를 거부해왔던 오프라 윈프리는 2007년 5월 일천한 경력의 당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오바마 지원 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윈프리는 당시 여성인 힐러리 대신에, 피부색이 같은 오바마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백인 여성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1년, 마지막 오프라 윈프리 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의 오프라 윈프리 쇼 마지막 녹화장은 눈물로 가득 찼다. 톰 크루즈, 윌 스미스, 마돈나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그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정신적 지도자, 아이가 없으면서도 미국 모성과 가족의 가치를 대변한 사람”으로 불렸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